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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비엔느 / 플릇 소나타 7번 1악장

만고 장춘 2017. 2. 15. 23:35

Flute Sonata No.7 in E minor

                 드비엔느 / 플릇 소나타 7번 1악장
                                Francois Devienne,1759-1803






1악장(Allegro poco moderato)
Claudio Ferrarini, flute / Luigi Fontana, cembalo   

                              Flute Concerto No. 7 in E minor
                                            1. Allegro
                                            2. Adagio
                                            3. Rondo

                  드비엔느(Francois Devienne,1759 1.3~1803 9.5)

 프랑스의 작곡가이며 플룻과 바순의 비르투오소(virtuoso)로서 명성을 떨친 드비엔느는 모짜르트와 같은 세대의 사람으로 일생을 태어난 프랑스 안에서 거의 보냈는데, 그의 빛나는 경력은 파리의 오케스트라의 역사와 결부시켜 볼 수가 있다.

프랑스와 드비엔느은 1759 년 1 월 31 일 프랑스의 JoinVille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馬具를 만드는 노동자였으며 14 남매 중에서 막내였다. 최초 음악에 대한 수업을 교향의 마을 합창단 소년으로 시작한 드비엔느은, Felix Rault에게서 Flute를 사사하게 되어었으며 20 세부터는 파리의 여럿 앙쌍블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그가 몸을 담았던 오케스트라로는 로즈 올랑픽, 콩세르바트아르, 테아트르 드 무쉬, 그리고 오페라좌 등을 들 수가 있는데, 앞의 두 악단에서는 플루트 주자로, 뒤의 두 악단에서는 바순주자로 있어 그의 다재(多才)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베르나르트 샤레트의 갸르드 나시오날레 악단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다

그는 교육자로서도 공헌을 하고 있는데 갸르드 나시오날레 파리지엔의 에콜 그라튀트 드 무지크에서 플루트주법의 교사로 있었고, 이 학교가 1795년에 에콜 드 샨과 에콜 드 데크라마시온이 통합되어 콩세를바트와르 나시오날 드 무지크가 되었을 때에 플루트의 초대 교수가 되었다.

18세기의 플루트는 현재와 같은 다건(多鍵)의 것으로 개량되지 않은 1건의 것이 일반적이 었는데 이 악기로는 반음 주법에서의 손가락 놀림, 소위 크로스 핑거링이 매우 어려워 1760년 경에는 보조건 3개가 붙여진 것이 급속하게 보급되었고 드비엔느도 교육자로서 이 보조건이 붙은 개량형의 플루트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자신은 평생 1건 플루트를 사용하였으며 그 연주로 명성을 얻었다. 교육자로서의 그의 또 하나의 업적은 1794년에 [플루트 주법론 Nouvelle me'thode the'orique et Pratique pour la flute]을 저술한 것이며, 이 책은 오랜 세월에 걸쳐 플루트 주자 필독의 명저가 되었다.

작곡가로서는 시대적으로 혁명기의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한 것과 그의 애국주의자적인 성격이 결부되어 매우 많은 야외 제전용의 애국적 찬가나 관악기용의 서곡등을 쓰기도 했는데, 음악적인 가치가 높은 것으로는 13곡의 플루트 협주곡, 7곡의 생포니 콩세르탕트, 4곡의 바순 협주곡, 여러가지 편성에 의한 30곡 이상의 실내악 등이 있으며 12곡의 오페라도 남겼으며, 1803년 파리 근교의 결핵 요양원에서 그는 눈을 감았은데 과로로 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의 악곡의 성격은 한 마디로 모짜르트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쉬울 것이다. 균형이 잡힌 형식감과 맑고 깨끗한 울림은 이 시대의 모든 작곡가들에게 어느 정도 해당이 되겠지만, 선율의 아름다움이나 토박이 파리쟝으로서의 문화적으로 세련된 울림은 역시 모찌르트와 공통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고 특히 그러한 경향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플루트 협주곡을 비롯한 기악 분야이다.

여러 고전주의 작곡가들이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그늘에 가려서 잊혀져 갔었듯이 드비에느도 한때는 잊혀진 움악가였다. 그러나 20 세기 플륫의 거장이라 불리는 장 피에르 랑팔이 그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