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6.25 전쟁시기 우리교육의 풍경
6.25 전쟁시기 우리교육의 풍경은 어땠을까?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쟁의 절망 속에 빠져야 했던 우리교육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6.25 전쟁 57주년을 맞아 전시가 시작된 서원대학교 한국교육자료박물관의 <해방과 전쟁기 우리교육의 풍경> 자료를 통해 그 시대 교실의 모습을 알아본다. "학교에 가보니 정부가 대전으로 이동하였다고 하며..."
유월 이십칠일 화요일 청(晴) "이제껏 가정실습으로 인한여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세사(世事)와 국가에 대변(大變)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썼(었)는데 금일 학교에 가니 교장선생님께(서) 25일 오전 6시에 북한군이 월남했다는 소식을 전하여 주는데 백천, 옹진, 장단, 강릉, 연백 다섰군데라고 하였다." 유월 이십구일 목요일 운(蕓) "학교에 가보니 정부가 대전으로 이동하였다고 하며 수원에 참모부가 왔고 한강철교가 끊혔다는 소문이 들렸더라..." 57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난 직후 충남의 한 중학생의 일기장에 나타난 상황이다. 들려오는 소문은 많은데 전쟁 상황을 몰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내용이다. "전쟁이 났다는데 내일 학교에 가야하나"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이 닥친 전쟁은 이렇게 어린 학생들에게도 크나큰 혼돈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회상을 반영하듯 당시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린 내용 또한 전쟁의 상황을 묘사하고 승리를 북돋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당시 국민학교 1,2학년용 교재인 <전시생활 2집> 국어책은 마을 밖 길가에 부서진 탱크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음악책에도 "서울로 평양으로 백두산까지..."(총진격의 노래) 등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실리기도 하였다. 탕크가 갑니다. 민들레 곱게 핀 언덕길 넘어서, 오랑캐 쳐부수러 탕크가 갑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천막교실에 앉아 칠판도 없이 땅바닥에 이 한 편의 시를 받아 적으며 전쟁승리를 다짐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맞선 남북 두 청년의 일기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남한 청년교사의 교무수첩과 서울을 점령한 북한 포병청년의 일기를 통해서 당시 전쟁으로 맞선 청년의 심경을 엿볼 수도 있다. 전쟁터에 나가기로 결심하면서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니를 걱정하며 남긴 남한 청년교사의 메모와, 남한을 해방시켰다는 신념에 가득 찬 북한 청년의 일기는 다시 한번 동족상잔의 아픔을 느끼게 된다. "참다 참다 못하여 읍사무소에 가서 국군지원서를 제출하였다.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어머니를 생각하니 적막한 마음이 끝이 없다."(경북 구지고등공민학교 엄원탁 교사의 교무수첩)
"서울네거리, 오늘 놈들이 전쟁의 불길을 저즐은지(저지른지) 사흘 만에 조선인민군 용사들의(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나는 벅찬 가슴 펼치고 억센 발자욱을 내디었다."(북한군 포병부대 김용철의 병영일기)
이밖에도 외국군대가 읽을 수 있게 한 면이 영어로 기록된 전시학생증과 두꺼운 누런 종이에 직접 쓰고 철끈으로 묶은 전시학급 경영안, 부산피난 시절의 학교 모습, 각종 교과서 등을 통해 생생한 전쟁의 또 다른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이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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